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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수기 성통만사 회원님들의 과외수기를 소개합니다.

[선생님] 과외 수기(박기영)

작성일
2012-01-11
조회
5450
작성자
관리자

인 연 맺 기

박 기 영

  

   내가 묵고 있는 하숙집의 규모는 꽤 큰 편이다. 주인아주머니 외에도 세 명의 아주머니가 함께 학생들의 식사를 준비한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한 달 정도 머물러보니 이상한 사실하나를 발견했다. 학생들은 주인아주머니와는 인사도 잘하고 농담도 하면서 잘 지내지만, 다른 세 명의 아주머니와는 거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한편, 세 명의 아주머니 사이에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많은 대화가 오갔지만, 정작 학생들과는 기본적인 인사나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학생들이 식사할 때 난동을 부리는 것도, 그 아주머니들이 불친절한 것도 아니었다.

   바로 어색함 때문이었다. 남한 사회에서 흔하지 않는 그 분들의 함경도 방언(정확히 연변 쪽에서 오신 것인지 아니면 함경도에서 오신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은 학생들로 하여금 문화적 거리감을 느끼게 했다. 나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 역시 매일 그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해야 했고, 의도적으로 피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오랫동안 학교에서 배워왔고 또 당연시 했던 ‘우리 민족’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성통만사’라는 단체가 있다는 것과 그 단체가 새터민 과외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기 때문에 굉장한 흥미를 느꼈고, 어쩌면 그 경험들이 나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바로 신청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2009년 1월 6일부터 봉림이와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매일 겪어야 하는 하숙집의 그 어색한 분위기 탓에 알 수 없는 막막함이 설레는 감정을 압도했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괜히 상처만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종종 맴돌았다. 누군가에게 조언을 듣고 싶어도 마땅히 청할 때가 없었다.

   하지만 봉림이의 활발하고 착실한 성격 덕택에 과외는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봉림이와 만난 지 2개월이 넘었지만, 봉림이는 공부하는 내용이 어렵거나 숙제가 많아도 불평 한번 하지 않았다. 그렇게 끊임없이 노력하면서도 봉림이는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힘이 났던 것 같다. 수업과 관련된 자료를 더 찾아보게 되고, 교재 연구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과외를 진행하면서, 새터민이 남한의 교육과정에 적응하는데 있어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영어를 배우는 것이 아닐까 한다. 영어가 거의 쓰이지 않는 북한과는 달리, 남한에서는 영어가 널리 쓰이는 정도를 넘어, 유아 시절부터 오히려 모국어인 한국어보다 더 많이 배우고 있다. 따라서 영어에 있어 남북 간의 격차는 상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대로 영어에 익숙해지고, 그 격차를 줄여간다면 새터민이 중?고등학교나 대학 생활에 적응하는데 있어 훨씬 수월할 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이렇듯 나의 변변치 않는 영어 실력이 봉림이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도 뿌듯해했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 속에 존재하던 막막함과 두려움이 서서히 걷혀간다는 느낌에 나는 한껏 고무되었다. 가끔 수업 도중이나 쉬는 시간에 공부 외의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한참 사회를 들쑤셨던 연쇄살인사건 뉴스부터, 영화, 여행, 진로문제에 이르기까지 화제는 다양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대화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서로가 살아왔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한번은 봉림이와 봉림이 언니께 저녁식사를 대접받은 적이 있었다. 정성들여 준비해주신 음식 또한 일품이었거니와, 식사를 하면서 오랜 시간동안 나누었던 진솔한 대화 역시 너무나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 ‘남한사람들은 새터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관한 대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는데, 평소에 그런 고민을 거의 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 날 이후, 주의 깊게 시청했던 『내셔널 지오그래픽-북한 잠입편(2007)』, 『크로싱(2008)』등의 영상물은 내게 깊은 인상과 함께 많은 물음들을 던져주었다.

 

   문화는 사람의 물질적인 영역 뿐 아니라 정신적인 영역까지 규정한다고 한다. 법률과 제도에 의해 변화될 수 있는 정치, 경제 분야와는 달리 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남한 사회는 분단이 된지 반세기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간 같은 문화를 공유해왔기에 북한을 동포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는 통일을 주장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 하지만, 분단이후 남과 북 사이의 문화적 이질감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 말인즉, 남과 북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그 ‘문화’가 남과 북이 다시 재결합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내가 맨 처음에 소개했던 일화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참여하고 있는 새터민 과외프로그램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문화적 이질감을 줄여나가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한층 더 성숙해지는 내 모습을 기대해 본다. 어쩌면 어색함이 생활이 된 내 하숙집의 분위기를 내가 바꿔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나의 짧은 영어 지식이 봉림이가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나에게 있어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